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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북송·남송) 시기 일본과의 교류

by historyinall 2025. 2. 27.


1. 외교 관계 및 사절 파견

당나라 말기인 894년 견당사가 중단된 이후, 송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공식적인 외교 사절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습니다 . 일본은 헤이안(平安) 중기 이후 후지와라씨의 섭정 하에 해외 교류를 금지하는 쇄국 정책을 펴서 백성의 해외 출입을 막았고, 송나라도 건국 직후부터 주변의 요나라·금나라 등과의 내외 문제로 여유가 없었습니다  . 그 결과 북송과 남송 시기 내내 양국 정부 간에 공식 사신 파견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송사(宋史)》 등 중국 측 기록에 일본에서 조공(朝貢)을 왔다는 언급이 극히 드물게 나타나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보낸 사신이 아니라 일본 승려나 상인이 사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예물을 바친 경우였습니다 . 예를 들어, 1173년 일본에서 명주(明州, 닝보)의 상선 책임자를 통해 송 조정에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일본의 조공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정식 사절이 아니라 민간 상인을 통한 간접 교류였습니다 .

비록 국가 차원의 공식 외교는 부재했지만, 승려 등이 비공식 사절 역할을 한 사례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승려 초넨(奝然)**은 법을 구하고자 983년 송나라로 가서 이듬해 송 태종을 알현하였고, 일본산 청동 그릇과 자국의 역사서 등을 헌상하였습니다 . 송 황제는 이를 반가이 받아들여 그에게 자색 법의와 관직을 하사하고 예우했으며, 초넨은 송에서 불경 대장경 1,000여 권을 받아 986년 귀국하였습니다 . 이러한 사례는 불교 교류의 일환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송 일왕 간 비공식 외교 역할도 수행한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송과 일본은 이 시기 공식 외교 채널 없이도 불교 승려나 상인들의 방문을 통해 제한적으로 소식을 주고받았고, 이러한 민간 교류가 양국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2. 무역 및 경제적 교류

송대에는 공식 사절 대신 해상 무역을 통한 민간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북송 시기에는 일본 정부가 민간인의 해외 왕래를 금지한 영향으로, 중국 상인들이 일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 실제 기록에 나타나는 북송 시기 중국 상선의 일본 왕래는 최소 70여 차례에 이르며, 절강 지방의 무역상들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일본을 오갔습니다 . 이에 비해 일본에서 중국으로 온 배는 북송에는 거의 없었는데, 남송에 들어와 정세가 변화합니다. 12세기 말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되어 무역을 장려하고 송나라도 해상 무역을 적극 장려하면서, 남송 시기에는 일본 상선도 중국 항구를 방문하기 시작하여 쌍방향 교역이 이루어졌습니다 . 1145년부터 1202년 사이에 일본 선박이 명주(宁波), 평강(平江, 쑤저우) 등 남송 연안에 표류 또는 입항한 사례가 여섯 차례 기록되어 있으며, 송 조정이 이들을 후대하여 비용을 지급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또 한편으로 일본 사료에는 **“왜인(倭人)이 풍랑을 무릅쓰고 연이은 배편으로 와서 물품을 판매했다”**는 기록도 있어, 남송 후기에는 일본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송에 와서 무역한 것을 보여줍니다 .

교역 품목을 보면, 송나라 상인들은 일본에 비단과 공예품, 약재, 도자기(특히 다완茶碗), 문방구, 서적 등을 가져갔고 일본으로부터는 모래 금(사금)과 수은, 호박(琥珀), 녹용, 복령 같은 자원 및 약재와, 일본산 비단직물과 포목, 부채, 일본도 등의 공예품을 들여왔습니다 . 이는 당시 일본의 수공업 기술 수준이 향상되어 송도 고품질의 일본산 공예품을 수입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북송의 문인 구양수는 “보검이 근래 일본국에서 나오니 월(越, 저장)의 장수가 이를 바다 동쪽에서 얻었다”라고 노래하며, **일본도(刀)**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칭송하였습니다 . 한편 송나라는 화약 제조 등에 필요한 유황과 같은 원료를 일본으로부터 조달하기도 했는데, 이는 일본이 유황 등의 광물 자원이 풍부했던 반면 송나라는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송은 일본산 원자재를, 일본은 송의 선진 물품을 얻는 상호보완적 무역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해상 무역로는 명주(현 닝보)를 중심으로 개척되었습니다. 송 상인들은 매년 여름 남풍을 타고 절강·복건 등 동남해안에서 출항하여 일본으로 향하고, 가을 이후에 귀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 명주 항은 당대부터 일본행 항로가 개설된 곳으로, 송대에도 일본 및 고려 무역의 거점 항구로 지정되어 가장 중요한 대일 무역항이 되었습니다 . 송 조정은 한때 상해 인근 화정 등지에도 시박사를 설치했으나, 이후 일본·고려로 향하는 배는 오직 명주에서 출발하도록 규정하여 무역 관리를 집중시켰습니다 . **일본 측의 주요 무역항은 규슈의 하카타(博多)**로서, 송의 상선들은 대마도나 히라도 섬 등에 잠시 정박한 뒤 하카타에 입항하였다고 전합니다 . 나아가 북송 후반부터는 중국 상인들이 규슈 뿐 아니라 일본해를 넘어 혼슈 북서해안의 쓰루가(敦賀) 지방까지 진출하여 교역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송 상인들의 활동 범위가 일본 내륙에 가까운 지역까지 확대되었습니다 .

이러한 무역은 양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에는 송나라의 동전(銅錢)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유통되었는데, 헤이안 말~가마쿠라 초까지 일본에서 자체 주조한 화폐가 거의 없었던 탓에 송전은 사실상 일본의 화폐 경제를 촉진한 통화로 기능했습니다 . 예컨대 12세기 말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던 무장으로서 송과의 무역을 적극 추진하였는데, 그는 고베 부근에 무역항을 개발하고 일본산 금, 목재, 유황 등을 송에 수출하고 송으로부터 비단, 도자기와 함께 대량의 송 동전을 수입하였습니다 . 이를 통해 얻은 막대한 수익으로 그는 정권 기반을 강화했고, 수입된 송 동전은 일본에서 종래의 물물교환 경제를 화폐 경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이처럼 송·일 간 해상 무역은 남송 시기 절정에 달하여 쌍방 모두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고, 일본의 중세 상업 발전과 송의 해상무역 번영에 기여했습니다.

3. 문화 및 불교 교류

불교는 송과 일본 간 문화 교류의 핵심 매개체였습니다. 당나라 시기에 계율종·천태종 등이 일본에 전해진 후, **송대에는 선종(禪宗, 일본의 선宗/젠불교)**이 새로운 교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북송 시기에는 중국을 방문한 일본 승려가 많지 않았으나(기록상 7명 정도), 남송 시기에 이르러 백여 명이 넘는 일본 승려들이 송으로 건너가 불법을 배움니다 .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송 조정과 가마쿠라 막부가 해금(海禁)을 완화하여 해외 왕래가 활발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 중 **에이사이(榮西, 11411215)**와 **도겐(道元, 12001253)**은 가장 저명한 사례로, 이들은 남송 시대에 중국으로 가서 절강 명주의 천동사(天童寺) 등지에서 송의 선종 수행을 익힌 후 귀국하여 **각각 임제종(臨濟宗)과 조동종(曹洞宗)**이라는 새로운 선불교 종파를 일본에 개창하였습니다 . 선종의 전래는 일본 불교계에 큰 변혁을 일으켜, 귀족 중심의 헤이안 불교에서 무사 계층도 수용할 수 있는 선불교가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들 승려들은 불경과 선법 뿐 아니라 송대의 선진 문화 전반을 함께 들여왔습니다. 에이사이는 귀국하면서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일본에 전파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일본에서 차 재배가 시작되고 차 마시는 풍습이 발전하여 다도(茶道) 문화로 꽃피었습니다 . 또한 송에서 시문학과 서예, 회화 등을 익힌 선승들은 귀국 후 일본 문화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송·원 대에 중국을 다녀온 일본 승려들은 선종 불교와 함께 당대 중국의 시(詩)와 서화, 다례(茶禮) 등의 문화를 가지고 돌아왔으며 , 일본에서 한시(漢詩) 창작, 묵화(墨畫) 등의 문예가 무사계와 선종 사찰을 중심으로 발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반대로 중국 승려들이 일본을 찾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특히 남송 말~원대에 걸쳐 송나라 선승들이 일본에 초청되어 가는 일이 잦았는데, 예를 들어 **쓰촨 출신의 선승 난케이 도류(蘭溪道隆)**는 1246년 일본 가마쿠라에 건너가 가마쿠라 막부의 후원을 받아 **겐초지(建長寺)**의 초대 주지가 되었고 일본 선종 교단을 지도하였습니다 . 그 외에도 兀庵普寧(올안보녕), 無學祖元(무학조원) 등의 송∼원 승려들이 일본에 건너가 선종을 전파하여 일본 불교 발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이처럼 송과 일본의 불교 교류는 단순히 종교 영역을 넘어서 문화 전반의 교류로 확대되었습니다. 송대의 불경과 사상이 일본어로 번역되고 일본 사상계에 영향을 미쳤으며, 송의 **선종 미술과 선문화(茶・禪 문화)**가 일본의 중세 문화 형성에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

4. 기술 및 학문적 교류

송나라와 일본 간의 교류는 기술과 학문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송나라는 세계 최초로 목판 인쇄술을 실용화하여 대량의 서적을 간행하였는데, 이러한 송판본 서적들이 무역을 통해 일본에 전해져 일본 내 불경 보급과 학문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 특히 **가마쿠라 시기(13세기 초)**에 송과의 교역이 늘면서 송에서 인쇄된 유교 경전과 성리학 서적이 다수 유입되었고, 이를 통해 **송대 신유학(성리학)**이 일본 학자층에 소개되었습니다 . 실제로 **13세기경 송나라를 방문한 선종 승려들이 주희(朱熹)**를 비롯한 송대 유학자들의 저술을 가지고 돌아와 일본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이후 일본에 성리학이 퍼지는 계초가 되었습니다 . 이렇게 들어온 송학(宋學) 및 서적들은 일본의 사상계에 영향을 주어, 이후 무로마치·에도 시대에 일본 유학이 발달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공예 기술 면에서도 송나라의 선진 기술이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도자기 제조술의 전래가 대표적입니다. 일본에서 자기(磁器) 생산이 본격화된 것은 송대 교류의 영향으로 여겨지는데, 전설에 따르면 가마쿠라 초기에 **도겐을 따라 송에 건너간 공예가 ‘藤四郎(등사郎, 도시로)’가 중국 **톈무산(天目山)에서 도자기 제작법을 배워와 일본에 전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송대의 정교한 도자기 문화(천목다완 등)가 일본의 도자기 생산에 커다란 자극을 준 것은 분명합니다. 송에서 수입된 청자나 도자기 그릇들은 일본 상류층에게 귀한 예술품이자 실용품으로 애용되었고, 일본 장인들은 이를 모방하거나 기술을 배워 국산 도자기 생산을 발전시켰습니다 .

직물 기술의 이전도 일어났습니다. 가마쿠라 시대인 1241년, **하카타의 상인 미츠타 야자에몬(滿田彌三右衛門)**이 송나라에 건너가 직조 기술을 배워 돌아와 일본에서 **하카타 직물(博多織)**을 창시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이처럼 송대의 섬세한 직조 기법과 문양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 고유의 직물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건축 분야에서도 송나라의 기술과 양식이 일본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13세기경 일본의 선종 승려들은 중국 강남 지역의 유명 사찰들을 답사하여 그 건축 배치도인 「오산십찰도(五山十刹図)」를 작성하였는데, 이는 일본 사찰을 건축할 때 청사진으로 활용될 정도로 송대 사찰 건축양식이 일본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 실제로 가마쿠라 이후 일본에 세워진 선종 사찰들은 **송나라 남방 사찰들을 본뜬 건축 구조(산문·불전 배치 등)**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밖에도 의학에서는 송나라의 한의학 서적과 처방이 전해져 일본 전통의학 발전에 영향을 주었고, 역법과 천문학 지식도 송을 통해 일본에 전달되어 과학기술 교류의 한 측면을 이룹니다 . 나아가 송대 회화와 공예 미술품이 다량 수입되고 양식 면에서 모방되면서, 일본의 미술계에도 새로운 기법과 미감이 전파되었습니다 .

맺음말 및 시대적 의의

북송과 남송 시기의 송나라-일본 교류는 공식 외교관계 부재 속에서도 무역과 종교를 통한 다층적 교류가 이루어진 사례입니다. 이는 당시 정치·경제적 배경과 맞물려 전개되었는데, 송나라는 북방 이민족 왕조들과의 갈등으로 육로 교역이 어려워지자 해상 무역을 장려하였고 , 일본은 헤이안 후기의 폐쇄정책에서 벗어나 가마쿠라 막부를 중심으로 대외 무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그 결과 12~13세기에는 민간 무역선과 구법승(求法僧)들이 양국을 오가며 활발한 교류를 펼쳤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선종 불교의 전파와 학문·기술의 공유가 이루어졌습니다. 송의 선진 문물과 사상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 중세 문화발전의 밑거름이 되었고, 동시에 일본의 자원과 특산품은 송의 경제와 문화에 보탬이 되는 등 상호 호혜적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송대의 중일 교류는 이후 원(元)·명(明)대를 거쳐 계속 발전하거나 변화하였으며, 동아시아 해역을 통한 국제 교류의 전통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

참고 문헌: 송사, 속일본기 등의 사서 기록; 남송 승려 익종 등의 여행기; 무역항 유적 자료; Chen Jiarong, 〈兩宋時期之中日交通〉; H. Yan, “The formation and fruits of East Asian maritime interactions” (2018) 등. 이는 모두 해당 시기 송나라와 일본 간 교류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료들입니다.